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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데모크리토스와 헤라클레이토스에 대하여/몽테뉴수상록1

라미뉴 2020. 3. 8. 12:49

데모크리토스와 헤라클레이토스는 철학자였다. 그 중에 데모크리토스는 인간 조건을 헛되고 가소롭게 보며, 밖에 나갈 때에는 늘 웃으며 조롱하는 상을 가졌고, 헤라클레이토스는 우리의 바로 이 조건을 연민과 동정심으로 보았기 때문에 얼굴이 늘 슬픈 상이었으며,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판단력은 모든 문제에 사용되는 도구이며, 모든일에 참견한다. 나는 어느 때는 헛되고 허무한 제목을 가지고 그 논제에 실속이 있는가, 그것을 지지하고 옹호할 재료를 찾아볼 수 있는가를 알아보려고 시도한다. 또 어느 때 나는 사람들이 많이 떠들어 댄 고상한 문제로 판단력을 움직여 보는데, 거기는 남이 찾아본 것을 다시 찾아보는 것 외에 이미 할 거리가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밝혀져서, 판단력을 움직여 볼 재료가 없다. 그래서 판단력은 그 중에서 어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이가를 골라 보려고 시도하며, 수많은 방법들 중에서 이것 또는 저것이 가장 잘 택하여진 방법이라고 말한다.

 

나는 되는 대로 아무 논법이나 잡아 본다. 어느 제목이든지 똑같이 좋다. 그리고 이런 논법을 결코 전면적으로 전개시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어떤 것도 그 전체를 보지 않는다. 무엇을 전반적으로 보여 준다고 약속하는 자들로서 그렇게 해 주는 자는 없다. 사물들이 각기 가지고 있는 백 갈래 부분들과 모습들 중에서 나는 어느 때는 그 중의 겨우 하나를 잡아서 훑어보며, 어느 때는 겨우 스쳐보기만 한다. 그리고 때로는 뼈까지도 찔러 본다. 나는 거기에 침을 찌른다. 넓게 하는 것이 아니고 내 힘 닿는대로 깊게 한다. 그리고 나는 전에 해 보지 않은 관점에서 잡아 보기를 잘한다. 내가 내 자신을 좀 덜 알았더라면 무슨 재료를 속속들이 캐어보려고 모험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저서에서 따 온 문장들을 여기 한마디 저기 한마디 흩어뿌려 놓으며, 어떠한 계획도 약속도 없이, 그것을 보장해 볼 생각도 없고, 내 마음 내키는 때에도 의견은 변하지 않고, 내 자시이 거기 집착해 있을 생각도 없으며, 의문과 불확실성과 나의 주요 소질이 무지에 항복하련다.

 

모든 동작은 자기 속을 내보인다. 파르살리아의 전투에서 명령하고 지위하는 데 드러내 보였던 카이사르의 심령은 그가 한가롭게 연애하던 솜씨에도 드러난다. 말을 알아보려면 경마장에서 다룰 때뿐만 아니라 천천히 걸어갈 때와 마구간에서 쉴 때에 보아서도 판단된다.

 

사물들은 그 자체로서 무게와 척도와 조건들이 있다. 그러나 심령은 내면으로는 우리속에서 사물들의 이런 소질을 자기가 이해하는 대로 재단해 간다. 죽음은 키케로에게는 두려워할 일이고, 카토에게는 바랄 만한 일이고, 소크라테스에게는 무관심한 일이다.

연민과 동정에는 가련히 생각하는 사물에 대해 어느 정도 평가하는 심정이 섞여 있다. 사람은 조롱하는 사물들을 가치 없다고 본다. 사람이 미워한다는 것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