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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언어의 허영됨에 대하여 外

라미뉴 2020. 3. 11. 16:44

 

 

우리의 눈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판단력을 속여서 사물들의 본질을 악화시키고 부패시키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 정치가 잘되고 정돈된 국가에서는 크레테와 라케데모니아에서와 같이 웅변가들을 그렇게 존중하지 않았다. 질서없는 군중와 시민들을 조종하고 선동하려고 꾸며 낸 연장이며 약과 같이 병든 국가외에는 사용되지 않는 연장이다.

웅변술은 로마 정국이 가장 나쁜 상태에 있고 내란이 세상을 뒤흔들 때에 가장 번창했다.사람이 손대지 않고 놀리고 있는 밭의 풀은 아주 무성하게 자란다. 그때문에 왕정에 의존하는 국가에서는 다른 나라들보다 그런 인물들의 필요가 적은 것 같다. 왜냐하면 어리석고 속기 쉬운 민중들 속에서 잘 볼 수 있는 성질로, 이 웅변이 보이는, 귀에 달콤하고 조화로운 소리에 쉽사리 조종되고 지배되는 것 때문에 이성의 힘에 의해 사물의 진리를 저울질하여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케도니아나 페르시아에서는 이름난 웅변가라고는 나온 것을 본 일이 없다.


이 장에서는 언어(말)에 기교와 수작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수사학이나 웅변술은 좋은 의미보다는 질서없는 군중과 시민을 조종하고 선동하는,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것중에 하나라는 이야기다. 수사학의 의미는' 말이나 문장을 꾸며서 보다 묘하고 아름답게 하는 기술'로 부정적인 면으로 사용된다. 나라가 불안정할때 이렇게 꾸며진 말은 사람들을 혼란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말에도 흔들리지 않는 곧은 정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 장에서 이야기한 말이 다시 생각난다. "나쁘게밖에 말할 줄 모르는 것과 말을 잘하는 것밖에 모르는 것 사이에 큰 차이를 발견하지 못한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는 나쁘게 말하는 것이라는 의미로도 해석해도 좋지 않을까?(나의 나름 해석이다.^^)

 

 

 

만일 우리가 가끔 자신을 고찰하기 위해 시간을 보내며, 다른 사람들의 일을 살펴보고 우리 주변의 사물들을 알아보는데 쓰는 시간을 우리 자신을 살펴보는데 사용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구조가 얼마나 약하고 실패하기 쉬운 부분들로 이뤄져 있는가를 쉽게 느낄 것이다. 우리 마음이 아무것에도 만족해 안정되지 못하고, 욕망과 공상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택할 힘도 갖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가 불완전하게 생겼다는 특이한 증거가 아니고 무엇일까? 우리의 욕망은 결단성 없고 불확실하다. 그것은 아무것도 좋은 방식으로 보유하지도 향락하지도 못한다. 인간은 이것을 사물들의 결함으로 간주하며, 자기가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물들로 자기를 채워 기르고 거기다가 자기 욕망과 희망을 적용하며 그런 일을 영광으로 삼고 존중한다.

 

우리의 인식과 향락에 들어오는 것은 무엇이건 만족을 주지 못함을 우리는 느낀다. 그리고 현재가 우리를 포만시키지 않는 만큼, 우리는 장차 오게 될 알지 못하는 사물들을 우두커니 바라고 있다. 내 생각으로는 그것은 사물들이 우리를 만족시킬 거리가 못 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병적이고 혼란된 상태로 사물들을 파악하기 때문이다.

 

 

 어느 사물이 특별히 좋거나 유용한 점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희귀하든가 새롭다든가 또는 어렵다든가 하는 점에서 그것을 권장하는 일은 우리의 판단력이 얼마나 약한가를 보여주는 좋은 증거이다.


이 장에서는 ' 맨 끝이 서로 마주치는 사물들'에 대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용기가 공포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사지를 떨게 하는 것임을 알려 준다. 순수한 납덩이는 극도로 뜨거울 때와 같이 겨울의 흑심한 추위에도 녹는다고 한다. 정욕과 포만은 탐락의 위와 아래 단계를 고통으로 채운다. 우둔과 예지는 인생에서 재앙으로 생긴 불행을 참아 내는 마음과 결단성에서 같은 점에 도달한다. 유년기와 노쇠기는 두뇌의 허약함에서 일치한다. 인생과 낭비는 끌어와서 차지하려는 욕망에서 일치한다. ABC의 무식이 있고, 학문의 뒤에 오는 박사님의 무식이 있다는 것도 그럴듯한 일이다. 평범한 인간의 조건은 이 양 극단의 중간에 처해서 불행을 알아보고 느끼며 그것을 참아 내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