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42.사치 단속법에 대하여

라미뉴 2020. 3. 7. 13:36

 

우리 법률이 식탁이나 의복에, 미친 수작으로 낭비하는 것을 억제하려고 시도하는 방법은 오히려 그 목적에 반대되는 일로 보인다. 진실한 방법은 사람들에게 황금과 비단 같은 것을 헛되고 쓸데없는 물건이라고 경멸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데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것의 가치를 올려 주고 있으니, 사람들이 그것에 싫증이 나게 하는 방법으로는 서툰 짓이다. 왜냐하면 왕공들만이 새우를 먹고 비단과 황금실로 장식한 옷을 입고 국민에게 그것을 금지한다는 것은, 이런 물건의 가치를 더 높이고 그것을 써 볼 욕심을 더 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왕공들이 과감하게 결정을 내려 이런 권세의 표시를 없애버릴 일이다.

 

법률은 그 반대로, 짙은 분홍과 금은 장식은 광대나 창녀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들에게 금지되었다고 말할 일이다. 셀레우코스는 로크리스 인들의 부패한 풍습을 이런 구상으로 교정하였다. 그래서 그는 교묘하게 국민들을 쓸데없는 것과 위험한 탐락에서 마음을 돌리게 하였다. 명예와 야심으로 사람들을 복종하도록 이끄는 것은 대단히 유익한 방법이었다. 왕들은 이러한 외부적인 개혁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그들의 행동 습관은 여기서는 법이 된다. "왕공들이 하는 일은 그들이 명령하는 일로 보인다."(퀸틸리아누스) 프랑스에서는 어디서든지 궁전에서 하는 규칙을 규칙으로 삼는다.


법은 지켜야 한다. 그러나 그 법의 실행에 있어서 유연한 생각과 본을 보여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하지 말라'는 법이 강제적이거나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그러하지 못하다거나 한다면 그 법의 실효성은 떨어질 것이다. 왕이 통치하던 시대는 왕의 행위자체가 법이 된다. 그렇다. 그의 행동을 보고 본을 삼아 변화가 일어난다는 이야기다. 저자 몽테뉴는 변혁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쁜 일만은 제외하고 모든 일에서는 변화는 두려워해야 한다.' 라고 말하고 있다. 습관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면서 이어 받은 법은 쉽사리 변경하지 않음에 대하여도 이야기를 한다. 새로운 변혁이 가져오는 그 뒤의 문제들과 그 변혁을 꾀하는 사람의 순수성이 결여된 변혁에 대하여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이에는 동감한다.

무언가를 사람들로부터 금을 거부하게 만들기 위하여 금 자체가 아닌 무시하고 천하게 여기는 어떤 대상에 금을 결부시킴으로써 사람들로부터 금을 거부하게 만드는 것은 좋은 방법일까? 우리가 좋아하지 않지 않던 것을 왕이 사용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던 것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은 그 사물자체가 아니라 왕이라는, 무시하고 천하게 여기는 대상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렇다면 이 촛점이 달라진다면 다시 사물의 좋고 나쁨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사물에 대한 촛점이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이 촛점이 되는 것 바람직한 방법인지 고민하게 된다. 지금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은 어디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