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양심에 대하여
너무 뒤죽박죽되어서, 적인지 내편인지,외모로나 언어로나 태도로나 분간할 수 없고, 양심이 애를 쓰면 이렇게가지 놀라 겁먹은 얼굴을 보인다. 양심은 우리 속을 드러내보이며, 자신을 비난하고 우리 자신과 싸운다. 징벌은 죄악의 뒤를 바로 쫓는다는 플라톤의 말, 벌은 죄악과 동시에 생겨난다는 헤시오도스의 말. 악행은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고민을 만들어 낸다. 고문은 위험한 발명이다. 그것은 진실을 시험하기보다는 참을성을 시험한다. 어째서 고통은 있었던 사실을 있다고 불게끔 하기보다는, 없는 사실을 있다고 자백하게 하는 것인가?
우리는 잘못을 저지르고 나면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다른 사람이 나의 잘못을 모를지라도 그 사실을 아는 나 자신은 양심이라는 것 때문에 많이 고통스럽다. 그래서 누구든 죄를 짓고는 살수가 없는 것이다. 죄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하느님은 다 알고 계신다.' 또는 ' 너 자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라며 죄에서 벗어나라고 이야기를 한다. 법을 심판하는 자, 타인의 시선보다는 내 자신이 떳떳해짐이 필요하겠다. 양심의 거리낌이 없다면 용기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한 시골 부인이 장군인 대법관 앞에서, 그 군대가 마을 주민을 약탈하는 동안, 한 병사가 그 부인이 어린애에게 먹이려고 남겨 둔 우유죽을 빼앗아 갔다고 고발하였다. 그런데 증거라고는 없었다. 장군이 그 부인에게 하는 말이, "거짓이면 그 고발때문에 죄가 되니 잘 생각해서 하라"고 요구해도 그 부인이 고집을 부리자, 그는 그 사실이 진실인가를 밝히기 위해서 병사의 배를 갈랐다. 그리하여 그 여자의 말이 옳았음을 알려 주었다는 것이다. 매우 교훈적인 방법이다. (p.387) |
"거짓이면 그 고발때문에 죄가 되니 잘 생각해서 하라.." 이후 확인을 위해 병사의 배를 갈랐다. 대법관은 어떻게 이런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이 시대에는 도둑질이 큰 죄였을까? 대법관은 병사에게 죄가 있음을 판단하고 확인과 동시에 죄에 대한 처벌을 행한 것일까?
6.실천에 대하여
우리의 정신같이 잘 헤매는 움직임을 좇으며, 우리 내심의 주름살의 불투명함 속에 침투해서 그 요동하는 수많은 세밀한 모습을 하나씩 포착해 보려는 기도는 생각보다 훨씬 힘든 가시밭길이다. 사색과 교양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외에도 경험에 의해 우리를 훈련시키지 않으면 사색과 교양만으로 우리의 행동을 강력하게 하기는 어렵다. 몽테뉴는 말에서 떨어지면서 죽음을 경험한다. 완전히 죽지 않은 상태, 그러나 죽은 것과 같이 행동은 할 수 없지만, 영혼은 아직 정신에 미약하게 남아 있는 상태. 그러나 이런 상태에서 하는 말이나 움직임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는 것. 이런 상태에서는 고통도 없다. 죽음이 이런 것이 아닐까. 고통이 없는 죽음 그 자체..다시 정신이 돌아왔을때 고통은 느껴진다. 참을 수 없는 고통. 이러한 경험에서 교훈을 끌어내야한다. 그리고 나에게 교훈을 주어야 한다. 내 자신에게 적용하기, 이것이 사색의 목표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묘사만큼 어려운 묘사는 없으며, 그만큼 유용한 일도 없다. 이것을 밖에 내놓으려면, 그만큼 맵시있게 잘 그려서 더 질서 있게 정리해야만 한다. 자신을 말하기!!!
내가 글쓰는 것은 내 몸짓이 아니다. 그것은 나다. 내 본질이다. 나는 자기를 평가함에는 신중해야 하며, 천하게 보여 주건 고상하게 보여 주건 자기를 보여줌에는 양심적이라야 한다는 생각이다. 실제 있는 것보다 더 못하게 말하는 것은 어리석음이지, 겸손이 아니다. 실제 있는 것보다 지나치게 잘났다고 생각하곤 분별없이 자기 자랑에 빠지는 것이, 내 생각으로는 악덕의 실체이다. 그것을 고치는 최상의 치료법은 자기의 말하는 버릇을 금지케 하여 ...(p.398) |
자기가 가진 수많은 불완전하고 허약한 소질들과, 마지막에는 인간 조건의 허무함까지 동시에 고려해 넣은 자는, 어떠한 특수한 소질을 가지고도 자만심을 낼 수 없을 것이다.
7.명예의 포상에 대하여
국가에 아무런 부담도 주지 않고 임금에게도 돈을 쓰게 할 필요없이 그들을 흐뭇하게 만족시켜 주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은 너무도 좋고 유익한 풍습니다. 어느 값없는 헛된 표지를 설정하는 일! 도덕은 유용한 것보다는 차라리 순수하게 자기 것인 영광스런 포상을 더 기꺼이 갈망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도덕이 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그것이 습관이 되면 표창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대수롭지 않은 일을 가지고 위대하다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돈과 명예에 대한 비유가 좋은 부분이 있다.
돈만 가지면, 우리는 하인을 두고 마차를 갖고 댄스,광대놀이 따위, 그리고 사람들이 받고 있는 가장 천한 봉사를 받는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아첨이나 매춘, 배신등의 악덕이라도 살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도덕적인 인물이 자기에게만 고유하게 독특한 것, 아주 고상하고 관대하고 후덕한 것외에는 이런 따위 평범한 재물을 즐겨 욕심내고 받지 않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며예는 그 주요 본질이 귀함이라는 특권이기 때문에...(p.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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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과 명상만으로 끝나지 않고 행동, 즉 실천으로 자기 자신을 단련시키는 것, 나를 유심히 관찰하고 나를 잘 살피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는 것, 인간이라는 헛점덩어리에다 죽음앞에 아주 연약하다는 우리의 본질을 안다면 자만심을 부릴 이유는 하나도 없음을 깨닫자. 너무 자신을 하찮게 말하는 어리석음이나, 그와 반대로 너무 과장되게 말하는 악덕의 행위를 하지 않고 솔직하게 자신을 말하는 연습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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